곡성 덕실 옹기촌 옹기는 청자·분청사기·백자와 달라
한국의 정신문화 깃든 옹기, 전시관 등 체계적 관리 필요


◆이야기를 시작하며

한국 천주교 박해의 중심에는 옹기 교우촌이 있다. 옹기는 박해를 받던 교우들이 피신 해,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주었고 교우들끼리 소통하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즉 한국 천주교에서 옹기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중에 한 곳이 곡성의 정해박해, 덕실 옹기촌이다. 그런데 천주교 성지나 가톨릭 전시관을 관람하다 보면 옹기가 아니라 청자나 분청사기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를 해결할 방안이나 나아갈 방향에 관한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옹기가 나에게 왔다

2025년, 큰일을 했다고 나에게 칭찬을 해줬다. 조선 천주교 박해 이야기를 소재로 ‘천주의 아이들’이란 청소년 소설을 썼고, 유아 초등생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 ‘옹기에 그린 십자가’를 출간했다.

내가 꼭 써야만 했던 이야기였다. 1827년 정해박해 진원지인 전라남도 곡성, 덕실 옹기 교우촌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 우리 집이기 때문이다.

1827년 일어났던 정해박해 터는 옹기 교우촌이다. 물론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산등성이에는 옹기 파편이 무더기로 쌓여 있고, 옹기 조각이 흩어져 있어서 쉽게 주워 모을 수 있다.

나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옹기 파편을 한 무더기 주워 오기도 했다.

그 시점에 곡성 천주교회에서는 가톨릭 역사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었고,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정해박해 덕실 옹기촌’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분청사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의 오지랖은 신부님께 분청사기를 전시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신부님은 옹기와 다른 도기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로 끝나서는 안 될 일 이었다. 아무도 바꾸려 들진 않았다.

물론 옹기에 대해서만 말한 건 아니었다. 곡성 성당이 본당인 나는 대학생 때 처음 정해박해 이야기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정해박해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쓰신 프랑스의 달래 신부님께서 기록해 놓으신 것처럼 나도 정해박해가 ‘조선의 모든 박해 중에서 통탄할 만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교우촌 옹기장이가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린 것에 화가 난 주막 주인이 밀고를 해버려서 사건이 시작되었고, 잡혀 온 교우촌 신자들은 대부분 배교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소설을 쓰려고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일성록과 전라감영의 관찬서에서는 ‘강한 믿음으로 동료 교인을 서로 보호하였고 배교자가 없없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정해박해 터에서 가장 가까이 살고 있으며 곡성 천주교가 본당인 나에게는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럽고 반갑고 기쁜 기록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난 의견을 내었다.

한국천주교회사의 기록과 일성록의 기록을 병기해야 한다고.
세상일이 늘 그러하지만, 자기 맘먹은 데로 흘러가진 않는다.
난 좀 별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옹기, 다른 자기와는 다르다

옹기와 청자나 분청사기는 다르다고 여러 신부님과 신자 분들에게 이야기를 해봤다.

고개만 끄덕이고 마는 분, 잘 이해가 안 가는 듯한 표정, 이해는 하지만 나의 뜻을 관철시키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비관론을 펼치는 분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이게 어디 행정민원을 제기하는 것인가? 하느님 이야기인데….

에라! 모른척하자고, 했는데 머릿속에서 옹기가 빙빙 돌아다녔다.

그래, 이건 하느님이 나에게 주는 사명일 거라고, 내 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옹기와 청자나 분청사기·백자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유약이 다르고 불을 들이는 온도가 다르다. 옹기는 잿물 유약에 1200도, 그 밖의 도기는 돌가루 유약에 1240도를 넘겨야 구워져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옹기는 하층민인 옹기장이들이면 누구나 구워낼 수 있는 생활용품이지만 청자나 분청사기·백자의 경우는 나라에서 관장하는 관요나 지방요로 천주교인들을 탄압하는 주체들이었다.

그러므로 천주교 관련 전시관에 청자나 분청사기가 전시되어 있는 건, 언짢다. 아무리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을지라도 청자나 분청사기는 빼내야 하지 않을까?

▲한국 천주교가 지켜야 할 옹기

조선시대 옹기는 요즈음으로 따지면 플라스틱 용기 같은 생활 필수용품으로 어느 고을에서나 쉽게 옹기점을 만날 수 있었다.

즉 흙과 땔감을 구할 수 있고 몸을 부릴 수 있는 옹기장이만 있으면 쉽게 생활 기반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옹기장이들은 옹기를 팔기 위해 전국을 누빌 수 있어서 천주교인들끼리 비밀리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지점은 옹기에 새겨진 표식이나 문양이다. 알게 모르게 십자가 및 물고기, 밀떡처럼 천주교를 상징하는 문양이나 표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의 천주교의 역사에서 옹기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옹기라는 수단이 없었다면 한국 천주교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을까?

난 우리나라가 선교활동 없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하느님을 받아들인 건 한글과 옹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 한국 천주교회에서 옹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답답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옹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도, 답답하다. 가장 먼저 옹기장이가 사라져 가고 있다. 당연히 옹기 가마터도 찾아보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옹기도 고장마다 만드는 방법이나 형태가 다르다. 그러므로 고장마다 향토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렇지만 아직 우리나라 옹기는 국가유산으로 등재된 바가 없다. 옹기 중에서는 가늠하지 못할 만큼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옹기들이 있다.

어쩌면 재현하지 못할 옹기도 있을 것이다. 이제 옹기도 국가유산 등재에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된 거 같다.

여기에서 한없이 강조해야 할 이야기는, 우리나라 조선 옹기는 세계의 여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잿물 유약으로 구워낸 오지그릇이다.

하느님이 깃들어 있는 옹기이다. 한국 옹기는 천주교회의 역사이며 박해의 역사이다.

즉 옹기는 한국의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기에 국가유산으로 등재가 시급해 보인다.

설령 국가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을지언정 한국 천주교 역사의 증언자 역할을 이보다 잘 해낼 기물이 어디 있겠는가.

▲K-컬쳐로 승화되길

그럼 옹기를 어떡하자고?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옹기전시관을 교구청이나 자치단체에서 만들면 좋겠다.

전국의 옹기를 수집·정리·분류하고 자료를 체계화시켜 국가유산 또는 세계복합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볼 준비를 하면 좋겠다.

우리 옹기는 음식문화와 종교 문화까지 깃들어있기에 가능할 거라고 본다.

조선 옹기전시관이란 타이틀만으로도 관광 콘텐츠로 충분하지 않을까?

더 확장해 보면 로마 천주교인들이 숨어들었던 공동묘지 동굴인 카타콤바, 한국의 카타콤바가 바로 옹기가마인 것이다.

천주교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영감을 줄 묵상의 장소가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이재명 대통령님과 유흥식 추기경님이 만나 2027년 교황 한국방문에 대한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뉴스를 보면서 항아리 k-컬쳐, 천주교 한류도 가능하지 않을까?

수많은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들랑거렸다.

사심으로는 2027년 정해박해 200주년을 맞는 곡성의 덕실 옹기 교우촌에 옹기전시관이 만들어지고, 한국의 카타콤바, 옹기가마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천주의 아이들’과 ‘옹기에 그린 십자가’를 쓰면서 200년 전의 옹기 교우촌 사람들과 함께하였다.

묵상도 많이 하였다.

그때 한강 작가가 화두 같은 질문을 던졌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난 믿는다. 박해를 받으며 숨어 살았던 옹기 교우촌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삶을 도울 것이고, 하느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순교자들이 우리의 영혼을 구할 것이라 걸 믿는다.

그 증거물들이 옹기로 남아있다.

난 옹기에서 하느님 모습을 본다. 하느님이 우리를 흙으로 빚어냈듯이 옹기장이들이 흙으로 빚어낸 옹기는, 하느님이시다.


●김성범(세례명:에지디오) 섬진강도깨비마을 촌장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는 『천주의 아이들』, 『옹기에 그린 십자가』, 『숨 쉬는 책, 무익조』, 『숲으로 읽는 그림책 테라피』, 『품안의 숲 따숲네』 등이 40여 권이 있고 창작 동요 음반으로 『김성범 창작요들 동요집』 등 16집이 있다.

그림책 『책이 꼼지락 꼼지락』은 2013, 2017년 개정 초등국어에 실렸고, 2024년 개정 초등통합교과서 자연 2-1에 동요 『숲으로 가자!』가 실려 있다.